[칼럼] 이 대통령의 '자성'이 의미 있으려면

이재명 대통령의 지난 19일 출입기자단과의 깜짝 간담회에서 눈여겨 본 대목은 진솔한 자기 반성이다. 이 대통령은 잇단 개혁 정책 후퇴의 배경으로 "저의 준비 부족이 제일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개혁 과제 수행에 대해 일종의 과잉 자신감이었을 수 있겠다는 반성을 한다"고도 했다. 준비와 절차가 부족했고,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진 게 잘못이라는 자기 고백이다. 사전에 예고되지 않은 격의 없는 자리여서 그 진정성과 절실함이 더 느껴진다.

이 대통령이 여기까지 온 데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하면서 얻은 '일잘러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 속도감 있는 행정과 관료들 기강 세우기, 투명한 행정이 바탕이 됐다. 당시의 경험과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대통령은 집권 후에도 그 방식대로 하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 법하다. 그러나 사안을 직접 챙기고 강하게 밀어붙이면 당장 가시적인 결과가 나는 시장·도지사와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첫번째 실책은 과거의 성공방정식을 그대로 답습하려 한 데서 비롯됐다.

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되는 부동산을 보자. 지난 1월부터 부동산 세제 문제를 집중적으로 엑스에 올린 이 대통령은 "부동산 정상화는 계곡 불법시설 정비보다 쉽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신년 기자회견 때만해도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던 터라 물밑에서 정책적 준비가 돼있나 싶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이 대통령 혼자 목소리를 높였을뿐 아무런 후속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세제당국에선 대통령이 앞서가는 바람에 정책을 신중히 검토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반년이 훨씬 지난 8월 이 대통령은 비로소 주택 공급에 눈을 돌렸다. 국무회의에서 "법과 제도를 고쳐서라도 파격적으로 택지를 확보하라"며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전면전을 주문했다. 얼마 전에는 2022년 이후 인허가와 착공이 크게 줄면서 '공급 절벽'이 발생했다는 말도 했다. 이런 사실은 갑자기 알려진 게 아니라 이미 통계로 나와있는 내용이다. 올해 초 이 대통령이 부동산 정상화에 깃발을 들 때는 왜 이를 몰랐을까. 만약 당시 세제를 거론하기에 앞서 공급 총력전을 폈더라면 지금 같은 수렁에는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40,50대의 등을 돌리게 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출시에도 이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금융당국자가 최근 국감에서 "일정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심사를 진행했다"고 실토했듯이 졸속 상장의 뒤에 청와대가 있을 거라고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삼전·닉스 레버리지 개인 투자자 손실이 10조원을 훨씬 넘고, 가장 큰 피해를 본 세대가 40대, 그 다음이 50대라는 자료가 공개됐다. 이들 입장에선 '큰 개미'를 자처하며 직접 주식 투자를 권한 이 대통령이 야속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자신감이 지나쳤다"는 이 대통령의 자기 성찰
시장, 도지사때 성공방정식 답습이 잘못의 단초
SNS 글과 국무회의 생중계, 절제와 관리 필요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차갑게 돌아선 농어촌 지역 민심에 사실상 백기 투항한 농지 전수조사도, "저항과 반발 때문에 모든 정부가 회피했지만 저는 회피하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실제 경작에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이 많고, 이들이 범법자로 내몰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거라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경자유전이라는 분명한 헌법 원칙을 제시하고 밀어붙이면 될 거라고만 생각했지 농지 운영의 현실과 부작용을 살피는 설계와 절차가 없었다.

현장 반발에 밀려 후퇴하거나 실패로 귀결된 사례들의 공통점은 이 대통령의 SNS와 국무회의 생중계가 꼽힌다. 정제되지 않은 정책 아이디어나 즉흥적 지시가 관련 부처의 검토와 이견 조정이 생략된 채 공식화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통령이 일단 던져놓고 속도전을 강조하다보니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 정책이 의미있는 성과를 내려면 정확한 목표 설정과 예상되는 부작용 검토, 부처 간 긴밀한 조율, 이해당사자 설득 등 모든 과정이 톱니바퀴 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지금은 대통령이 지향하는 목표만 뚜렷하지 정책 기획과 집행의 많은 단계가 실종돼 있다.

이 대통령은 SNS 활동이 논란이 되자 "목숨줄이자 국민과의 숨구멍"이라며 직접 소통 의지를 밝혔다.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려는 이 대통령의 자세는 민주정의 지도자로서 존중받고 권장해야 할 일이다. 국무회의 생중계도 국민의 알권리 확대와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다만 우려되는 건 메시지의 절제와 관리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절대적 영향력이 있기에 밖으로 표출되기 전에 주도면밀함이 갖춰져야 한다. 이 대통령의 SNS는 대통령이 직접 관리하는 것과 참모들 조언을 받는 것으로 나뉘어져 있다는데, 대외로 나오는 모든 글은 사전에 거르는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많은 정보가 모이는 대통령의 자리는 1년쯤 지나면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기 쉽다고 한다. 다행이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다. 유능한 대통령은 잘 아는 것이라도 티내지 않고 직언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이 대통령은 이제 집권 2년차이고 기회가 많이 남아 있다. 속도에 얽매이지 말고 현안을 차근차근 풀어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