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동훈 내치고, 이준석과 손잡은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역대급 필리버스터는 주도면밀한 계획에서 움직였다는 인상을 준다. 당 대표가 예정에 없던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것도, 법으로 주어진 24시간을 꽉 채운 것도 치밀한 계산이 뒷받침됐음을 의미한다. 안팎에서 몰아치는 리더십 위기를 한방에 돌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돌아가는 모양새는 그의 뜻대로 되는 것처럼 보인다. 친한계를 포함해 계파와 관계없이 칭찬이 쏟아지고, 당원들 반응도 떠들썩하다. 모두들 "우리가 장동혁이다"고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내게는 다 계획이 있다"고 했던 장 대표의 호언장담이 술술 풀려가는 듯하다.

장 대표가 말한 자신만의 '타임 스케줄'과 '계획'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 있다. '윤 어게인' 세력과 부정선거론자들까지 포함해 우파를 결속시킨 다음, 중도로 세력을 확장해 지방선거 승리를 이루겠다는 심산이다.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해보이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지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면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고 문을 닫으면 된다'는 허무 개그같다.

장 대표는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두 개의 트랙을 밟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한동훈 쳐내기다. 강성 지지층 목소리를 대변해 '배신자' 한 전 대표를 당에서 축출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는다. 가족들을 동원해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출당'에 버금가는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릴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장 대표는 한 전 대표가 비상계엄 이후 처음으로 낸 '우호적 메시지'에도 싸늘하게 응대했다.  

다른 하나의 트랙은 중도 통합을 명분으로 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연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통일교 특검'으로 구슬을 뀄다. 이 대표가 먼저 특검을 제안하자, 장 대표는 즉각 "개혁신당과 뜻을 모아야 한다"고 화답했다. 처음 마음이 통하기가 어렵지 그 다음은 식은 죽 먹기다.

우파 결속하고, 중도외연 확장한다는 장동혁 계산
이준석은 장동혁 감싸고, 한동훈 비난하며 편들기
'윤 어게인' 결별하고 계엄 진정한 사과가 정공법

사사건건 국민의힘에 독설을 던지던 이 대표 태도도 묘하게 달라졌다.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민주당이 장 대표의 다주택 보유에 대해 역공에 나섰을 때 "최고급 외제차 타는 사람들이 경차, 용달차 여러 대 있는 사람을 공격한다"고 감쌌고, 장 대표가 광주를 매달 찾겠다고 하자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국민의힘과 연대설 조건으로 '윤석열 절연'을 내세웠던 기류도 점차 옅어지는 분위기다.  

'잠재적 아군'의 적은 적이라는 논리는 세력을 확장할 때 늘 적용되는 법칙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한 이 대표의 공격 수위도 부쩍 높아졌다.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이자 "정말 충격적"이라고 쏘아부쳤다. '당게' 논란과 관련해서는 "당원 여론을 조작했다면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고도 했다. 두 사람 관계가 정치적 구원이 쌓여있는 사이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저의가 궁금해진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장 대표는 한동훈을 내쫓는 대신 이준석과 손잡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한동훈 출당으로 우파를 결집하고, 이준석과 공조를 통해 외연을 넓히는 게 장 대표 계획이 아닌가 싶다. 장 대표는 강성 보수 이미지를 희석하고 외연 확장 고민을 덜어줄 카드로 이 대표가 필요할 터고, 이 대표도 당 조직과 선거자금이 열세인 상황에서 독자노선의 현실적 한계를 절감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조만간 회동할 예정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이들이 손 잡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권력을 유지하고 세를 확장하는 도구로 이용되는 '정치공학'의 가장 큰 맹점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거다. 정치 영역에 숨어있는 수많은 변수를 도외시하는 바람에 계획한 의도를 벗어나고 다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민의힘 개혁을 주장해온 한동훈을 내쫓으면 내부가 탄탄해진다는 가정부터가 잘못됐다. 주요 당직을 '윤 어게인' 인사로 채우고 당내 비판 세력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도 장 대표 계획을 어긋나게 할 변수다. 이런 행위가 중도층을 잡기는커녕 더 거리를 두게 만들 악수라는 건 굳이 거창한 계획을 짜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장 대표 계획이 성공하려면 정공법을 택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장 대표는 최근 당내 행사에서 '변화'를 14차례 언급했지만 불법 계엄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는 하지 않았다. 대다수 국민의 뜻을 거슬러 탄핵에 반대하고 윤석열을 보위하려했던 과오에 대한 처절한 반성 없이는 그 어떤 계획도 이뤄질 수 없다. 한동훈을 내치고 이준석과 손잡는다고 중도층이 반색할 걸로 생각한다면 국민을 너무 우습게 여긴 것이다. 장동혁은 필리버스터 효과에 너무 취하지 않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