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인사 참사' 왜 반복되나
윤석열 대통령이 신임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을 발표 하루 만에 철회했지만 후폭풍이 거셉니다. 이례적인 신속한 임명 철회는 정 본부장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 파장 때문인데, 검증 실패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실에선 정권 출범 초의 잇단 인사 실패 악몽이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정치권에선 인사검증 시스템도 문제지만 검찰 출신을 중용하려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 본부장 아들 학폭 사건은 이미 5년 전에 언론에 보도된 사안입니다. 2018년 11월 KBS는 정 본부장 아들이 고등학생이던 2017년 동급생에게 욕설 등 언어폭력을 행사해 강제전학 처분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검사였던 정 본부장이 아들 전학 처분을 막기 위해 재심 청구와 소송에 나선 사실도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인사검증 과정에서 전혀 걸러지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은 "정 본부장 본인이 실토하지 않은 게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궤변에 불과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면 검증시스템이 무용지물임을 자인하는 셈입니다.
국가수사본부장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고위공무원으로, 인사 검증은 경찰 외에 대통령실, 법무부, 국정원도 참여하게 돼 있습니다. 1차적으론 국수본부장 공모를 진행한 경찰청의 책임이 제기됩니다. 경찰은 공모 과정에서 학폭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경찰 외에 여러 기관이 교차 검증을 하도록 돼있어 경찰 책임으로 그칠 일은 아닙니다.
현재 고위공직자 검증은 크게 3단계로 나뉩니다.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실이 인사 추천을 하면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서 1차 검증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2차 검증을 실시하는 구조입니다. 정 본부장의 경우 경찰 추천 뒤 법무부와 대통령실에서 별도의 인사 검증을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정치권에선 인사 라인이 검찰 일색으로 꾸려진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무부 인사검증단은 윤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맡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에선 인사기획관(복두규)과 인사비서관(이원모), 공직기강비서관(이시원) 등 추천과 검증의 전 라인이 이른바 '윤석열 사단' 검사 출신들로 포진돼 있습니다. 김남우 국정원 기조실장도 역시 윤석열 검찰 라인의 측근으로 알려졌습니다.
정 본부장이 받는 의혹은 아들의 학폭뿐이 아닙니다. 그는 2021년 대장동 비리 핵심인물인 김만배씨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려 논란이 됐습니다. 검사 시절에는 두 차례 징계를 받은 전력과 본인의 군 면제 논란, 장인인 옛 새누리당 조진형 전 의원의 '청목회' 사건 등도 거론됐습니다.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었으면 '부적격' 결정을 받았겠지만 이번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검사들의 '제 식구 감싸기' 본능이 작동한 결과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최종 인사권자인 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자신이 마음에 두는 인사는 어떤 결함에도 밀어붙이다 보니 검증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다는 겁니다. 대통령실은 26일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인사 검증에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지만 대통령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사실 정 본부장 인사도 지난해 여름부터 윤 대통령이 낙점했다는 얘기가 파다했습니다. 공모는 요식행위에 불과했으니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을리 만무합니다.
지난해 8월 학제개편안 논란 끝에 자진사퇴한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음주운전 이력으로 임명 전부터 장관 부적격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정호영 전 복지부 후보자 낙마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증 단계에서 논란이 불거졌지만 윤 대통령이 알고서도 밀어붙였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이태원 참사' 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사퇴 여론이 높은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도 맥락은 같습니다. 윤 대통령의 좁은 인재풀에서 비롯된 측근 기용의 타격은 결국 대통령에 본인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낙마 사태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데는 그가 검사의 직위를 이용해 모든 법적 수단을 총동원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겨레신문 박용현 논설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때 발언을 들어 숙련된 법 기술자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합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장관의 출국금지 사건과 윤미향 의원 사건 등에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고 합니다. 👉 칼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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