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이 건드린 세 가지 역린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파행으로 끝난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이 후보자 임명을 강행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진보진영에서도 나옵니다. 제기되는 각종 의혹에 이 후보자가 제대로 해명을 못한 데다, 여론의 부정적 반응이 임계점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동산과 자녀 입시·병역 등 국민의 정서를 건드린 세 가지 역린은 수용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통합과 실용인사 의지는 확인된 터라 이 후보자 낙마로 인한 타격은 크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이 후보자의 숱한 의혹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부동산 관련 논란입니다. 서울 서초구 대형아파트 부정 청약 의혹은 자칫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을 만큼 파급력이 큰 사안입니다. 부양가족 부풀리기로 부당하게 청약가점을 높인 뒤 아파트에 당첨됐다는 게 의혹의 골자인데, 이 후보자는 결과적으로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습니다. 이 후보자는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런 의혹의 당사자를 요직에 임명할 경우 가뜩이나 공격을 받고 있는 이재명 정부 부동산 대책은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트 부정 청약 의혹은 과거 자신의 발언으로 부메랑을 맞고 있습니다. 이 후보자는 바른정당 대표 시절인 2017년 당시 문재인 정부가 지명한 국무위원의 서울 개포동 아파트 위장전입 논란을 거론하며 "문 대통령의 5대 인사원칙(위장전입 등)을 모두 위반했으니 임명철회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로또 청약'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는데, 2018년 국정감사에선 "대한민국 상위 0.01% 현금 부자에게만 대박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아파트 정책을 질타했습니다.

이 후보자의 세 아들을 둘러싼 '부모 찬스' 의혹은 젊은 세대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공정'과 '불평등'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점에서 대형 악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차남과 삼남은 집에서 가까운 지역아동센터와 경찰서에서 각각 공익근무 요원으로 근무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이들이 근무를 시작한 해부터 공익요원을 받았습니다. 이후보자의 장남과 삼남은 입시 스펙을 쌓기 위해 고등학생임에도 특혜를 받아 국회에서 인턴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여기에 장남은 미국 대학원 재학시절 쓴 논문과 관련해 추가로 '아빠 찬스' 의혹이 더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이 후보자는 자녀 관련 의혹에 대해 소상하게 해명하기는커녕 답변을 피하거나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했습니다. 대부분 '개인의 신상과 관련된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댔는데, 자녀 의혹이 제기된 고위공직자들이 의혹을 회피하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이 후보자는 '편법 증여' 의혹에 대해선 아예 사실과 다른 답변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후보자 명의의 세종시 전세 아파트를 장남이 사용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매달 전세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다"고 했는데, 장관 후보자 지명 직전에 2년치 사용료가 한꺼번에 입금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특정 사건에 대해 도덕성을 잣대로 집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감정이나 정서를 뜻하는 이른바 '국민정서법'은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불문율입니다. 때론 헌법이나 실정법보다 중히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 후보자 아파트 부정 청약 의혹은 내집 마련을 원하는 국민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했고, '부모 찬스' 의혹은 입시와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을 좌절케 했습니다. 실정법 위반을 따지기에 촉박한 인사청문회는 국민정서법으로 심판하는 자리입니다. 국민정서법을 위배한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셈입니다.

청와대는 그간 이 후보자의 쏟아지는 도덕성 의혹에도 청문회까지는 지켜본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의 해명과 여론 반응을 지켜본 뒤 임명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진실을 밝히지도 않았고, 사과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임명을 강행할 경우 오히려 이재명 정부 인사 원칙과 국정에 대한 의구심과 분노로 번질 우려가 큽니다. 보수진영 정치인을 등용한 탕평과 국민 통합 의지는 평가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결함투성이 인물을 무조건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게 국민 다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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