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투자', 그게 정부 역할이다

이재명 정부가 29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보수 야권의 무차별적인 비난이 사실 관계를 왜곡한 정치적 공세라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미국과 일본, 대만 등 주요국의 반도체 산업 지도에 정부가 적극 개입해 부지 선정과 세제 혜택 등 각종 지원을 통해 재편되는 현실을 외면한 발목잡기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반도체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시장 논리와 산업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대한 균형 발전을 함께 모색하는 정책적 판단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글로벌 무대에서 반도체 부지 선정은 기업의 성장 전략과 국가 전략이 결합한 산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반도체 종주국을 자처하는 대만 정부의 부지 선정 관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2021년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를 수도 타이베이와 TSMC의 본거지에서 수백킬로 떨어진 남부 가오슝에 조성했습니다. 타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과 지진·태풍 등의 자연재해에 대비한 분산 배치가 유리하다는 대만 정부의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습니다. 현재 TSMC가 대만에서 가동중인 10여개 팹의 위치는 최북단부터 최남단 가오슝까지 서해안을 따라 거의 일렬로 배치돼 있습니다.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된 가오슝의 입지는 그리 좋은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전기 공급과 용수, 우수 인력 부족 등 과제가 산적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부지 선정 후 대만 정부와 지자체가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 물과 전력난 등 모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앞서 가오슝 인근 타이난 공장 건설 과정도 비슷했습니다. 당시 타이난 공장 부지는 사탕수수밭과 농경지가 대부분이었고, 홍수 위험도 컸습니다. 남부에서 반도체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협력업체와 인재가 몰려드는 등 지금은 타이난에서 가요슝까지 대만 남부 전체가 첨단 반도체 생산기지로 탈바꿈했습니다.

일본이 최남단 규슈와 최북단 홋카이도에서 반도체 단지를 건설중인 것도 국가적 전략이 담겨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방 소멸 위기에 직면했던 규슈 지역에 TSMC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건설 비용의 절반에 달하는 약 4조원의 혈세를 퍼부었고, 과도한 특혜라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일본의 상징적인 대기업들을 합작 주주로 밀어넣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최근 규슈를 포함한 8개 권역을 반도체 클러스터로 지정해 사실상 일본 전역을 첨단반도체 제조기지화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반도체 기지 분산화로 일본 정부는 '제조업 부활'과 '지방 살리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얻는 효과를 거둔 셈입니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기업 부지 결정은 더욱 노골적입니다.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뿌리며 첨단 기업의 공장을 유치한 미국의 반도체법은 시장 논리보다 정치적 유불리가 더 깊숙이 작용했습니다. 인텔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오하이오, TSMC가 둥지를 튼 애리조나는 미국 대선 때마다 승패를 가르는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입니다. '러스트 벨트' 부흥을 통해 표를 얻으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치적 의도에 기업들은 사막과 낙후 지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보조금 지급의 대가로 인텔 지분의 10%를 소유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주요국의 사례는 반도체 등 첨단 공장 부지 선정이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 대기업들의 호남행에는 냉정한 손익계산서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기존 클러스터인 경기 용인의 전력·용수 고갈과 영남권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대응 한계 등이 두드러진 상황에서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공급이 가능한 호남에 눈을 돌렸다는 겁니다. 여기에 지역 균형 전략을 꾀하는 정부가 기업의 리스크를 완벽히 상쇄해 줄 만한 지원 패키지를 약속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관측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의 등 떠밀기 주장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호남 반도체 공장은 비수도권에 처음으로 미래 성장산업인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이번 반도체 클러스터 논쟁의 본질은 시혜적 안배가 아니라 반도체 영토를 확장하려는 국가적, 산업적 생존 전략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지역 균형발전 차원뿐 아니라 반도체 대기업의 해외 진출을 국내로 돌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산업인 동시에 경제안보와 직결된 영역이어서 정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수백조원이 투자되는 국가적 사업에 정부의 정무적, 전략적 판단이 개입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는 인식이 요구됩니다.

[세상읽기] 선택적 모병제,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선택적 모병제 도입을 시사하면서 조만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선택적 모병제는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설계하기에 따라서 청년에게 괜찮은 첫 일자리와 배움을 열어주는 따뜻한 사다리가 될 수도, 가난을 병역으로 나누고 좋은 자리를 가진 자에게 몰아주는 차가운 칸막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 칼럼 보기

[이영태 칼럼] 철수씨의 투자 혹은 투기

한국 증시가 연일 롤러코스터 장세를 이어가면서 '투기판'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이영태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지금 우리 사회는 주식 투자(혹은 투기)에 지나치리만큼 관대하다고 지적합니다. 부동산에선 전세대출까지 틀어막아 서민들을 월세로 내모는 마당에, 주식은 빛내서 투자해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브레이크도 필요할 땐 밟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 칼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