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가 수상하다

윤석열 정부 비리 의혹에 대한 고소·고발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집중되지만 공수처가 관련 수사에 굼뜬 모습을 보여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검찰에 대한 불신으로 공수처가 대안으로 인식되면서 권력기관의 불법행위 규명 요구가 급증하고 있으나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의 직권남용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과 관련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고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봐주기 수사 의혹 관련 검사 고발 사건 등이 거론됩니다. 공수처도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법조계에서 제기됩니다.  

지난해부터 감사원의 권익위 표적감사 정황과 관련된 고소·고발이 쌓였지만 공수처가 별다른 수사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게 대표적입니다.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 감사와 관련해 첫 고발이 이뤄진 게 지난해 8월이고, 이후에도 세 차례나 추가 고발이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공수처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고발인인 전 전 위원장을 지난 4월 불러 조사했을 뿐,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 사무총장 등 피고발인 수사는 손을 놓고 있는 듯한 양상입니다.

이런 가운데 감사원이 지난달 공수처의 통신자료 사찰 의혹에 면죄부를 줘 두 기관의 '거래' 의혹까지 불거졌습니다. 공수처가 주요 수사를 하면서 일반인의 통신자료를 광범위하게 확보해 '민간 사찰' 논란에 휩싸였는데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문제없음' 결론을 내린 겁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공수처가 최 원장과 유 사무총장을 수사 중인 상황을 감안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공수처와 감사원이 서로의 약점을 봐준 것 아니냐는 해석입니다.

현재 공수처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수사는 억대 금품 수수 혐의를 받는 경찰 고위 간부 뇌물 의혹 사건입니다. 경무관이 기업체로부터 수사 무마를 청탁받고 거액을 받은 혐의인데, 공수처가 자체적으로 수사에 나선 첫 인지 사건이라 공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공수처는 수사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당수 검사와 수사관을 이 사건에 투입했습니다. 물론 경찰 고위직의 뇌물 수사는 필요하지만 정작 공수처가 수사력을 집중해야 할 수사는 뒷전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수처는 송영무 전 국방장관의 계엄문건 관련 허위서명 강요 의혹 수사도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송 전 장관이 "위수령은 잘못된 게 아니다"고 발언해놓고 이를 뒤집으려고 고위간부들 서명을 강제로 받게했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검찰이 담당한 이 사건의 본질인 계엄령 문건 수사는 진척이 없습니다. 계엄문건의 핵심인물인 조현천 전 사령관이 도주 5년 여만에 입국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됐으나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검찰의 계엄령 문건 수사는 답보상태인데 공수처의 곁가지 수사만 속도를 내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역점을 둬야 할 수사는 현 정부 권력기관의 의혹 규명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시민단체 등에서 고발된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관련 고발은 증폭되는 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신속성을 요하는 사건입니다. 양평 고속도로 사업은 1조8,000억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으로, 이미 수십억 원의 세금이 소요됐습니다. 정치권의 소모적 공방을 하루빨리 해소시키려면 수사기관의 철저한 수사가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범죄를 감싼 수사 검사들에 대한 고발 사건도 공수처의 존재감을 보여줄 사건입니다. 검찰은 2019년 검찰과거사위원회의 권고로 김 전 차관을 재수사해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했지만 당시 공소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검찰이 2013년과 2014년 1·2차 수사 때 기소했다면 유죄 판결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박근혜 정권 때 김 전 차관을 대놓고 봐준 검사들을 처벌하라는 게 고발 내용입니다.

공수처의 존립 근거는 권력기관의 불법 행위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이를 수사하고 바로잡아야 할 최후의 보루인 셈입니다. 특히 '검찰 카르텔' 해체는 공수처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입니다. 공수처는 출범 후 줄곧 수사력 부족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수사 인력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리더십 부재도 원인으로 지적됐습니다. 여론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머뭇거림이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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