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총선까지 밀어붙이기, 과하면 역풍분다
좀처럼 해결 조짐이 보이지 않는 '의정갈등'이 여권의 총선 전략 때문이라는 지적이 의료계 안팎에서 나옵니다. '의대 증원' 이슈가 여론의 호응을 받자 총선 때까지 2000명 증원 밀어붙이기 방침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분석입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불안과 혼란이 커지는데도 임시방편에 불과한 대책들을 쏟아내는 것도 총선 때까지 일단 둑을 막고 보자는 계산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총선까지 남은 한 달 동안 의료 대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경우 여권에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습니다.
현재 대통령실에선 의대 증원 정책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의 동력으로 작용하는데 대해 고무돼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실제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난달 말부터 소폭 상승한 윤 대통령 지지의 가장 큰 이유로 의대 증원이 꼽히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의료계 집단행동에 연일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여권 일각에선 4년 전 총선에서의 더불어민주당 압승 배경에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여당에 힘을 몰아주자는 여론이 크게 작용한 사실을 참고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굳이 2000명을 고집하는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정부가 의료계 대화 의사를 밝히면서도 2000명 증원은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게 석연찮다는 겁니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어느정도의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은 만큼 규모를 놓고 논의하는게 합리적인데, 아예 선을 긋는 것은 총선을 겨냥한 정략적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애초 2000명이란 숫자 자체가 여권의 총선 전략과 연관돼 나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지난해 초부터 의료계와 협의하던 보건복지부가 여름까지 언급했던 증원 의사 수는 500명선이었는데, 갑자기 10월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후 증원 수준이 대폭 늘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 사안에 큰 관심을 갖고 있고, 대통령이 직접 발표할 거라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더니 설 연휴직전 2000명 증원 깜짝 발표가 나왔습니다.
발표가 졸속이라는 점은 정부의 후속 대응이 임기응변식이라는 데서도 확인됩니다. 정부는 증원 발표 후 "만반의준비를 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습니다. 5년간 매년 2000명을 늘려 놓겠다고만 했지 5년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이라는 시간표가 없습니다. 지역의와 필수의에 대한 보상 강화, 지역 공공의료 확충 계획 같은 명세표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의대생들 교육 우려는 무대책에 가깝습니다.
정부가 의사 공백 사태를 막기 위해 간호법 제정 재논의를 시사한 것도 주먹구구식 대책에 불과합니다. 불과 1년 전 간호사들을 직역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이며 간호법 거부권을 행사한 사실을 망각한 것도 놀랍지만, 재논의가 불러올 파장은 고려하지 않는 무신경이 더 큰 비판을 낳습니다. 지난해 간호법 통과 당시 의사들뿐 아니라 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 직역 단체들이 이에 반대해 단체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의사들이 병원을 떠난 상황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호사와 응급구조사들까지 반목한다면 의료현장이 어떻게 될지는 관심조차 없는 모습입니다. 일단 총선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보자는 단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료공백을 메운다며 수천 억원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메우고, 예비비를 부랴부랴 편성하는 것만 봐도 졸속 대응이 드러납니다.
이미 의료 현장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의료진은 지칠대로 지쳤고, 환자들은 수술연기 등으로 하루하루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끝없는 의정갈등에 국민들의 피로감도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물론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의료대란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행태 역시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여권 내서도 당장은 호재가 되겠지만 사태가 장기화될시 악재가 될 것란 전망이 나옵니다. 자칫 정부가 되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삼는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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